2013년 8월 15일 목요일

신세계 -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가

얼마전 목동에서 지인을 만날 일이 있었다.

한때 친하게 지냈었건만 연락이 뜸해지면서 잊고 있었다. 다행히도 어느날 문득 심심해서 열어보게 된 예전 네이버 계정의 메일함에서, 수 천건의 스팸메일들 가운데 외로이 자리하고 있는 그의 메일을 보게 되었다.


본의아니게 오랫동안 씹은 꼴이 된 것이다. 나는 매우 마음이 여린 소시민이기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2년여만에 답메일을 보냈고, 한달여만에 목동에서 만나자는 답장에 대한 답장을 받게 되었다.


그의 메일엔 반가움이 베어있었다. 아까 말했듯이 내 여리디 여린 마음은 그가 오래간만에 다시 보내오는 호의에 바로 녹아버렸다. 나는 답장에 대한 답장에 대한 답장을 보냈다.



오래간만의 목동이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지 않았나. 그와의 추억이라는 따끈따끈한 국밥을 참으로 오래간만에  말아먹을 생각을 하니, 전혀 춥지 않았다.


그리고 목동은 화려했다.


고풍스런 키다리 주상복합이 나를 반가이 맞았다. 다들 활기차보였다. 거리에서는 외제차가 심심찮게 보였고 사람들은 여유로운 미소를 가끔씩 내게로 보내왔다. 
경제불황의 여파는 이미 내 영혼까지 모두 거덜나게 만들었을 지언정, 이곳 목동만은 차마 덮치지 못한 듯 했다.



중소기업들이 스러져가고, 단가 때려치긴가 뭔가로 인해 피해를 본다지만 전국구에 체인점 없이 단 하나뿐인 '행복한 세상' 쇼핑몰은 중소기업인주제에 성황리 영업중이었다.


그런가 하면 목동의 교회는 하나님의 똥꼬마저 위협할 듯한 높은 십자가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주일을 맞아 삼삼오오 교회로 등교하는 신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포동포동했다.  목사님도, 권사님도, 집사님의 얼굴에도 하나같이 반드르르한 윤기가 돌았다.


그러나 아무렴 상관 없었다.


그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허름한 오피스텔같은 곳인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론 내 똥같은 현실은 이곳의 번영을 고깝게 바라보도록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 여린 소시민이다.

질시하면서 세상은 왜이런가, 왜 이리도 불공평하고 내가 존나 간당간당하게 살지 않으면 안되게끔 하는가 라고 생각해봤자, 내 새가슴만 쓰라릴 뿐이겠지...



한동안 이런 고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마침내, 저 멀리 그가 다가왔다.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개선장군의 포스를 체감케 했다.

잘 빼입은 검은색 트렌치코트, 입에 문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말보x, 손에 낀 갈색 가죽장갑, 그리고 보란듯이 검은색 서류가방에 빼꼼히 삐져나와 있는 H모 대기업의 사원증까지.

그는 2년만에, 전형적인 현대판 브루주아의 모습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환영의 뜻으로 그의 손을 그가 눈물이 핑 돌만큼 굳세게 부여잡았다.

요새 잘 나가나보네 같은 비아냥 거림이나, 니들이 서민의 고충을 아냐는, 그런 패기넘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나는 소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내민 손을 잡는 순간, 18세기 파리시민들이 루이 14세를 앞에 두고 느꼈을 살인충동 비스무리한게 들었지만 그래 봤자 결국 또 내 새가슴만 아픈 것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을 오랜만에 만난 것은 맨vs맨. 의리 대 의리의 부활인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친구자슥의 비열한 웃음에 맞웃음으로 응수하면서 슬슬 어두워지는 목동의 불야성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내 손을 잡아 끌며 신세계백화점을 가리키면서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자, 나는 결국  손을 뿌리치고 쌍욕을 퍼붓고야 말았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목동에서 '행복한 세상' 쇼핑몰을 언급하면서도 그 옆에서 주변 경관을 해치고 있는 무지막지한 신세계 백화점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하긴 그걸 눈치 채는 사람이면 목동에 거주하고 있거나, 한때 목동에 거주하던 사람일테니 알아챈 사람이 있더라도 그리 반갑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정확히 2008년 12월 24일 밤 8시 36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신촌 쪽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에 들어갔던 나는 한 알에 500원이나 하는 무식한 가격의 페reroro셰라는 초콜릿을 먹으려 초콜릿 세트 하나를 계산대 위에 올렸다.

계산하려 다가오는 점원이 초콜릿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왠지 경멸의 뜻으로 읽힌 것은 나의 과민반응이었을까.

내가 지금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친도 없이, 직장도 없이, 차도 없이, 코트도 없이, 말끔한 구두도 없이, 감히 이 비싼 초콜릿을 나하나 먹자고 모처럼 들어왔다고 무시하는 것이었을까.

거스름돈을 영수증에 싸서 내 손바닥 위에 툭 떨어뜨리는 점원의 태도에 시린 내 마음은 얼어붙었다.

백화점을 나올때까지 그런 눈길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10m 뒤에서 내가 다가오는 게 불쾌하다는 듯이 유모차를 벗어난 아이를 서둘러 유모차에 집어 올리는 한 귀부인.

내가 다가가자 마침 다 먹었다는 듯이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넣는, 무례한 중산층 가정의 아이.


그리고 내가 나가려고 하자 마치 내가 이런 귀족들의 터전에 들어와 본 적이 없어서 문도 못 연다고 생각하는지 비웃으며 손수 문을 열어주는 직원까지.



이렇듯 신세계 백화점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요새 잘 나가는 듯한 지인이 신세계 백화점을 가리키자, 제아무리 힘없고 새가슴에 소시민인 나일지라도 일말의 감정에 북받쳐 잠깐 욱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곧 장난이었다면서 당황해 주춤거리는 지인에게 가볍게 미소를 지을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지인을 따라서, 그들의 터전, 신세계 백화점으로 들어갈 수 밖엔 없었다.



그러지 않고 이 잔인한 불야성의 거리를 벗어나 당당히 현실로 돌아오기엔,


이 초라한 소시민의 배가 너무나도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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