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과도 같은 영화이다.
물론 가장 돋보인것은 두명 크루즈 들이다.
헐리웃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얼짱인 탐 크루즈와.
백만불짜리 미소를 지닌 페넬로페 크루즈가 만났다.
탐 크루즈는 이 영화의 원작인 '오픈 유어 아이즈'를 본 후.
리메이크 작품이 나온다면 꼭 자신이 남자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물론, 여자 주인공은 페넬로페 크루즈를 원했음에는 여부가 없다.
이 영화에 탐 크루즈가 푹 빠진것은 아무래도 그의 종교적 신념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익히 잘 알다시피 그는 사이언톨로지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1950년대 SF소설가였던,
미국의 론 허버트라는 작가가 탄생시킨 종교이며, 주요된 종교적 신념으로는, 외계인과 UFO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추호도 탐 크루즈의 신앙심을 비난할 이유나 목적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이언톨로지의 믿음과 신념
을 지지하는 바이며,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무교임을 밝혀둔다.
분명 바닐라스카이라는 영화의 내용은 터무니없다.
라엘리안 무브먼트라는 종교와 라엘리라는 교주가 행하는 사업중 한가지인 냉동인간 보관사업에 대한 것을
골자로 한 내용이다. 실제로도 라엘리안 무브먼트에서는 망인의 시체나 혹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만을
절단하여 냉동 보관을 해 준다고 한다.
그들은 해동기술이 발달하는 미래에는 얼려진 그들을 해동시키고 부활 시키리라 믿고 있다.
물론, 탐 크루즈가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종교는 아니지만, 외계인으로부터 침략을 대비하는 사이언톨로지
로써, 충분히 스스로 냉동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영화의 내용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으리라
추정한다.
분명히도 탐 크루즈는 SF소설의 마니아일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마이너리티리포트, 우주전쟁과 같이 최근에는 SF영화 위주로 필모그라피를 채우고 있다고 보인다.
어느 정도 일정 면에서는 '매트릭스' 와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고 생각 한다.
인위적인 가상의 것이라는 것과.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생활 한다는 설정에서 말이다.
네오와 데이빗은 그 세상에서의 절대적 위치에서는 동일한 면을 지니고 있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는 용도와 목적성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지닌다.
네오는 자신을 희생하지만, 분명히도, 데이빗은 철저히 개인적인 용도에 할애한다.
물론 그것이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정체성의 발견에 대한 차이점일 수도 있을 것이니 데이빗을 비난 하는 것
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럼에도 데이빗의 그릇이 작다는 점에 대해서는 피할 수 없다고 본다. 그저 그는 유산을 상속받은 어린아이
에 불과했고, 마치 정신적 성장은 어린아이에서 계속 머물러 있던 것 일지도 모른다.
쉽게 실증을 내어버리기도하고, 소모적이며, 즉흥적인 면들... 그저 얼굴만 잘생기고 돈만 많은 얼간이와 같
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얼굴은 잘 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돈은 그렇게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점은 영화를 떠나서도 실제로도 탐 크루즈와 나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행동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여럿 존재한다.
처음에는 데이빗의 친구보다 더 좋아하고 그를 자신의 청소도 안된 집까지 보여주며 키스까지 해놓고서.
데이빗 얼굴이 조금 망가졌다고 그를 냉대하고 쌩까려고 한 점에 대해서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비록 망가졌다 하더라도 웬만한 사람들 보다는 잘생긴게 탐 크루즈였다. 솔직히 역겹진 않았다.
외모지상주의의 씁쓸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신맛을 알아야 단맛을 안다고 했던가?
분명히도 데이빗은 그동안 맛 보지 못했던 신 맛을 외모라는 것 때문에 느껴본 것이다.
허나, 그것은 경제적인 신 맛 까지는 치닫는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그것은 작가가 데이빗의 정신적인 혼란의 상황에 좀더 집중을 하고자 하기 위함일 수 도있다.
물론 일곱 난쟁이라는 장치적 요소는 막판에 까지 청자들을 긴가민가하게 할 정도로 요긴하게 사용 되었다.
그들의 개런티가 조금은 부족하다 느낄 만큼 극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배우들 이었다.
51%의 지분을 지닌 대주주 데이빗은 극중 내내 일곱 난쟁이에 대해서 많은 의식을 하며, 내부적으로는 그들
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릴적 부터 느껴왔었던 것들이 현재에 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을 이겨내는 것 이야 말로 데이빗
이 스스로 성장을 해 낼 수 있어 보였고, 그들을 이겨내는 것이 전부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소피아가 나타나기 이전의 이야기 였다.
마치 기독교와 천주교의 역사가 예수 이전과 이후로 나뉘듯이 그녀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가장 정점의
장치이자, 배우이다.
오직, 데이빗에게는 소피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줄리아나에게 했던 입에 사정하는 행위는 그녀에게 하지 않는다.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며,
그만큼 그는 비로소 그녀로 인해 성숙해진 것이다.
줄리아나가 그저 대중적인 팝가수였다면, 소피아는 고상한 예술 무용가였던 셈이다.
마지막 장면, 높은 빌딩에서, 그를 위해 인사를 남긴것은 다름아닌 소피아 밖에 없다. 비록 소피아는 죽고
없겠지만, 그녀의 따뜻함 만은 데이빗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름다운 모네의 바닐라스카이 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녀....
부디 눈을 뜬 데이빗이 행복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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