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역사상 이렇듯 관객에게 대담하도록 까발려 놓고 스릴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있었나?
시종일관 빠른 전개. 두뇌회전에 치중하는 비현실적 스릴러물 보다 좀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이코패스형의 범죄자와 그를 쫓는 사람으로 구성 된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구조이다. 추가된 점이 있다면, 영화 전반적으로 무능한 공권력을 내비친 다는 것과, 우리에게는 익숙한 추격자가 경찰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혹자들에게는 통쾌함을 가져다 주는 장치 였을 수 있다 생각한다.
분명히도, 범죄자는 천재형 사이코패스도 아니었음에도, 멍청한 우리의 '영화속' 경찰들은 시종일관 무능함 만을 보여준다. 범죄자를 잡겠다는 의지조차도, 자신들이 경찰이기 때문이 아닌, 황당하게도 시장에게 벌어진 사건을 상충시키기 위함이다. 이렇듯 당연한 경찰의 행동 조차도 영화에서는 조롱하고 있는데, 이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저 경찰의 행동들이 답답하고 분노할 뿐이다.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결정적 역할과 노력은 경찰도 아닌 전직경찰 뿐인 현직 매춘 포주에게 주어진다. 범죄자는 공권력을 농락이라도 하듯 행동한다.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며,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매춘 포주가 범죄자를 뒤 좇는 동기는 포주 답지 못하게도 자신의 사무실 매춘부 때문이다. 분명히 그 매춘녀와 어떠한 정분도 맺고 있지 않음에도 단순히 영화는 포주의 금전적 문제 때문으로 그의 어려운 동기를 묘사한다. 영화속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포주가 그 내면은 따뜻한 것인지 몰라도 그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물론 그러한 외형적 것으로 그의 인격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니 깊게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는 전직 경찰 이었던 자신의 경력을 다분히 활용하여 범죄자를 쫓는데 사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핵심적인 것들은 우연에 의한 것들에 의존하며, 부족한 추격자의 동기와 더불어, 오점을 남긴다. 매춘녀의 차량을 쉽게 찾는 부분이나, 우연히 범죄자의 차량과 접촉사고를 내는 것, 또한 사고를 내고도 불같의 그의 캐릭터에도 불구,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점.. 또한, 범죄자의 지능 문제이긴 하지만, 범죄자가 계속 같은 핸드폰 번호를 이용해 같은 사무실의 매춘녀를 찾는 모습과, 끝 부분 어차피 도망 칠 것인데 무엇하려 비맞으며 마당에 땅을 파고 힘들게 시체를 뭍고 목사의 집에서 집을 나가던 중 추격자와 마주치던 것... 그러한 황당함의 연속에도 내용 전개의 스피디함과 스릴이란, 이 영화 최고의 장점은 그것들을 가려준다.
핸드폰조차 터지지 않는 서울에 위치한 목사(?)의 고급주택. 또, 경찰들이 추정한 '집 앞마당에는 묻지 않았을 거야.' 라는 것에서.. 도대체 어떤 집을 말 하고 있던 것 이었을까? 범죄자가 범행을 저지른 목사의 집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치 마당이 있는 집이란 것을 훤히 안다는 듯... 신급의 탁상수사능력을 보여주는 경찰과.
다 살아나고도 도망을 한 곳이 고작 수퍼마켓인 매춘부와...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왔는데, 안방을 내주곤, 죽음의 순간까지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던 수퍼마켓 아주머니... ㅡㅡ;; 여러명의 사람을 죽이고 또, 자신이 죽인 목사의 집에 살면서도..동네 수퍼마켓 아주머니와 평소 친분을 쌓아두고 있었던 대담한 범죄자 등 모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라면 결코 사람을 죽이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사이코패스 범죄자 역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련의 범죄자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다.
아마도 작가는, 무방비상태의 범죄에 대한 공공의 무책임과 김빠진 공권력이 지키고자 하는 사회. 통제력을 잃은 세태를 조금은 비약적 화법으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애는 누가 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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