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영화 제목에 대해서도 적용될 격언이다.
Die hard...
이 영화제목을 지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가막히게 지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확실히 브루스윌리스는 장장 25년에 걸쳐서 매우 힘겹게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죽으려고 안달이 되서 폭발현장에도 뛰어들고 로켓탄에 직격도 맞아보지만 결국엔 우리집 바퀴벌레같은 운빨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잊혀질만 하면 극장가에 '나 아직 살아있어요'하고 포스터로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권총 한방, 주먹 한방에 죽어버리는 엑스트라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등산화 밑에 깔린 애집개미의 처량한 운명과 마주하는 것 같은 애절한 느낌이 든다.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자본이 바로 수명이라고 들은적이 있건만 영화속에서 마주하는 이런 불합리함은 99%의 국민들에게 완벽한 절망만을 안겨주고 있다.
사회란 곳은 이렇게나 삭막한 곳이었나.
그런데도 이를 슬퍼하지는 못할 망정 이 남자가 죽으려고 한시간 반 동안 용쓰는 모습을 낄낄거리면서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제정신인가.
착각하지 마라, 관객들이여. 저런 상황이 실제가 된다면 당신들의 처지는 주인공 자신도 원하지 않는 '운 없는 생존'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 99%의 엑스트라와 같게 될것이란 걸 명심해야한다.
운 좋게 악당을 때려눕히고 폐허속에서 걸어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운이 좋은게 아니라'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세상은 천부적으로 불평등하다. 브루스가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록 99%의 당신과 1%의 지도층간의 양극화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이 영화를 보면서 브루스가 1초라도 빨리 자신의 소원대로 죽어버리도록 기도해야 마땅하다.
브루스의 운빨 넘치는 삶을 위해 얼마나많은 비주류, 중산층이 희생당했는가.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슬퍼하며 방황할 수십배에 달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무엇이 되는가.
폭발이나 총격으로 팔 한쪽, 다리 한쪽만 잘린채로 살아남은 말그대로 Die hard한 사람들은 무엇이 되는가.
그들의 참상을 보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많은 시민과 어린이들은 어떻게 되는것일까.
브루스가 그 장소에 나와서 표적이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이들은 스크린에 모습한번 비춰지지못한채 고통받았다.
브루스여!
한때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
항상 가래끓는 목소리로 자신은 '이 도시의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티베트 승려 한명을 잡고자 소시민들의 소중한 교통수단이었던 케이블카를 붕괴시켰고,
광대 한명을 잡으려고 오토바이로 폭주하며 온 도시의 차량 사이드미러를 부숴뜨렸으며,
마지막으로는 마스크를 낀 천식환자 한명을 붙잡기 위해 무허가 비행을 하면서 고층빌딩 유리창을 깨부수고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렇게 말했다.
'일찍 죽어서 영웅이 되거나 오래살아서 악당이 되거나'.
오, 브루스여!
부디 그 말을 명심하길 바란다.
진정 죽으려고 한다면 살고자 악당들에게 겨눈 총을 자신의 머리에 들이대어라.
그것을 못하겠다면 당신은 위선자이다.
Die hard가 아닌 Live hard가 되는 것이다.
거만한 Die hard라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히어로 해괴모니로 이뤄진 허위의 굴레를 벗어던져라.
브루스여!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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